“>의 ‘화식열전’에서도 이르기를 ‘물이 깊으면 고기가 그곳에서 생겨나고 산이 깊으면 짐승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사람이 부유하면 인의가 부차적으로 따라온다’고 하였소. 무릇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을 좇아다닐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물과 산처럼 깊이 파고 담으면 고기와 짐승처럼 자연 그곳에서 부귀가 생겨날 것이오.”
— 최인호, 상도
“비단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사, 단, 주 등이 주종을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최고급의 비단을 주단이라 부르고 있었다.”
— 최인호, 상도
“잘못될 수 있는 것은 잘못되기 마련이지만,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때만 잘못된다.”
— 제이슨 츠바이크, 머니 앤드 브레인

사실 우리나라 영재교육은 다 사기입니다. 영재교육받아서 잘된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90퍼센트 이상이 일반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입니다. (중략)

미국에서 조기교육을 받은 애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교수이거나 적어도 충분한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집안의 자제들입니다. 그렇게 좋은 여건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사례를 제가 다섯 사람 정도 알고 있는데, 모두 다 30대에 학계에서 사라졌어요. 물론 타고난 천재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확률이 워낙 낮습니다. 대부분의 천재니 영재니 하는 애들은 집안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천재’들입니다. 만들어진 천재는 번아웃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 것만을 기준으로 과학자가 될 자원을 뽑는 건 결코 좋은 잣대가 아닙니다. 이공계의 미래를 정말로 걱정한다면 고등학교 전교 1등들이 의대 가는 걸 박수치며 좋아해야 해요. 그 정도 정신적인 유연성도 갖추지 못한 교수들이 어떻게 이공계 위기를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공부논쟁, 김대식+김두식
“물론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 애들은 열심히 산 학생들이고 목표도 뚜렷해요. 집안도 좋고 성실한 학생들이 많죠. 그런데 창의성이 떨어져요. 그건 교수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예요. 그런데 왜 창의성이 떨어지는지는 얘기하지 않아요. 왜 창의성이 떨어지냐?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냥 열심히 산 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힘이 다 빠진 거예요.”
—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공부논쟁, 김두식+김대식
“정서적, 신체적 건강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편함에 직면해서도’ 편안과 안전을 찾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는 내 본능 회로를 재훈련시켜 불편을 예상하거나 경험할 때마다 공황발작 버튼을 누르지 않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진정한 건강과 행복은 그저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을 배우게 된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진정한 건강과 행복은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역경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편안함의 배신
“영감은 당신이 쓰고 있을때 온다.”
— 매들렌 렝글
“수영을 하면서 수영하는 법을 배운다. 용기를 내면서 용기 내는 법을 배운다.”
— 매리 데일리, 브레네 브라운의 인용에서(세스고딘, 이카루스 이야기)

100년 전만 하더라도 트롤로프나 디킨스와 같은 작가들이 생업을 유지하면서도 평생에 걸쳐 40권 또는 그 이상의 책을 써낸다는 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자리에 앉아서 글을 썼고, 그리고 완성했다.

그러나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 글쓰기가 신과 같은 재능이 필요한 대단한 일이 되었다. 그러면서 음주가 늘고, 절필이 유행처럼 번졌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보다 글을 쓰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훨씬 흔해졌다.

글을 쓰는 이들에게 작가의 벽이 닥치는 것처럼, 난데없이 말문이 막히는 화자의 벽도 있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종일 또는 며칠 동안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특별한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 삶의 혼란이 모두 잦아들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화자의 벽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말을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이야기 하다가 마지막으로 또는 아주 가끔 현명한 말을 한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말하는 능력은 향상된다. 어떤 이야기는 성공하고, 어떤 이야기는 실패한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의 성공 확률이 조금 더 높을 뿐이다.

매일 그렇게 쓰자. 하루도 빠짐없이 쓰자. 일기나 소설이 아니라 분석하는 방식으로 쓰자. 세상에서 우리가 본 것들에 대해 분명하고, 간결하고, 솔직하게 쓰자. 보고 싶은 것을 써도 좋고, 글쓰기를 통해 강의를 하거나 어떤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 써도 좋다.

매일 한 문장이라도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글쓰기 실력은 분명 좋아질 것이다. 물론 우리 두뇌 한쪽에서는 아미그달라를 활성화시켜 끊임없이 저항을 일으킬 것이다. 글을 쓰지 말라고, 어떤 글도 공개하지 말고 숨겨두라고 수선스럽게 굴 것이다.

실수를 하지 않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글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 흠 없는 일이다.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말하듯 글을 쓰자. 충분히 자주.

— 세스고딘, 이카루스 이야기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놀랍고 힘든 감정노동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돌아서면 곧바로 육체노동의 오랜 안락지대에서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 좀 더 안전한 느낌을 찾아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세스고딘, 이카루스 이야기